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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은 누가 구해주나
기사입력: 2019/10/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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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강화소방서 지방소방교 권 기 철  © 김학승

 

  여기 A 소방대원이 있다. A12년간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생명을 구한 베테랑 구조대원이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왼쪽 뺨에 혈관육종암이 생긴 것. 혈관육종암은 혈관에서 암이 발생해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희귀병이다. 왼쪽 뺨 전체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 후에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치료를 할 때마다 입속에서 고름이 한가득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A는 그런 일련의 시간을 견뎠다. 하지만 A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A의 혈관육종암을 공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 이 문제의 시비를 가리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으로 재판을 넘겼다. 법원은 국내 유수 대학병원에 혈관육종암과 소방활동 사이의 연관성을 자문했다. 하지만 단 한 군 데 도 응하지 않았다. A는 고개를 떨궜다.

 

  여기 소방대원 B도 있다. B13년간 119안전센터와 구조대를 오가며 현장을 누빈 베테랑 소방대원이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덮쳤다. 수상인명구조훈련을 하다 의식을 잃고 익수된 것. 재빨리 동료 대원이 구했다. 하지만 B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B의 몸에는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 심폐기능 보조장치인 에크모가 부착됐다. 병원에선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B는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물론 병상에서 일어나는 데까지 수개월이 걸렸지만 말이다. BA와는 다르게 공상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B는 치료비가 입금된 통장 내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받은 치료 중 절반이 비급여 항목이어서 전체 치료비 중 절반밖에 받지 못한 것. 공상만 인정되면 치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B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A, B 대원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 인연으로 최근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얼마 전까지 병상에 누워 죽느니 사느니 했던 그들과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A는 식당 안에서도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혈관육종암 때문에 왼쪽 뺨 전체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허벅지 살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왼쪽 뺨에 붙어있는 허벅지 살은 그곳이 본래 자기 집이 아니라는 듯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그 때문인지 A는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BA에 비해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였다. 하지만 심장과 폐는 그렇지 못했다. 조금만 오래 걷거나 달려도 심장과 폐는 금세 지쳤다. 물에 대한 트라우마도 여전했다. 그 트라우마가 1년을 갈지 아니면 평생토록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었다.

 

  AB는 여전히 소방대원이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소방 이야기뿐이었다. 소방 활동이 자신의 왼쪽 뺨을 도려내고, 심장과 폐를 허약하게 만들어놓았음에도 소방 이야기만 했다. A는 가장 참혹했고 처참했던 구조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AB곧 복직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완치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A는 공상을 인정받지 못했고, B는 반쪽짜리 공상만 인정받은 상태다. 그 상황에서 가장으로서 더 이상 생활비와 치료비라는 이중고를 극복하기 어려웠을 게다. 물론 사고 후 동료와 소방서 차원에서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은 일시적이다. 매일 병원을 오가고, 검사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아이들은 커 가는데 반대로 말라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마음 고생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그들과 그들 가족이다. 그 무거운 짐을 이제는 국가가 덜어줘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공상인정 절차가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공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증책임이 국가에 있다. 가령 소방대원이 혈관육종암으로 공상신청을 했는데, 공상을 인정받지 못하면 왜 혈관육종암이 공상이 아닌지에 대한 입증을 국가가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공상을 인정받지 못하면 혈관육종암이 왜 공상인지, , 혈관육종암과 소방활동 사이의 연관성을 소방대원 스스로가 밝혀야 한다. 문제는 혈관육종암의 발병 원인이 현대의학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희귀병이란 점이다. 그런데 이를 반평생 불만 꺼온 소방대원에게 지운다는 것은 공상을 포기하란 말과 같다. 공상을 인정받아도 문제는 남아있다. B 대원의 사고처럼 명백히 공상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비급여 항목이 많다면 반쪽짜리 공상에 불과하다. 이는 A, B 대원의 사례처럼 생활고 때문에 완치조차 되지 않은 소방대원을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꼴이 된다. 이것이 과연 사고당한 소방대원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거칠게 봐서 소방대원은 시민 대신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일을 한다. 위험한 일을 하면 일반인보다 자연히 다치거나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화재와 구조현장을 오가면서 빈번하게 유독물질을 접하고 처참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것이 쌓여 암에 걸리기도 하고, 극심한 트라우마, 불면증 때문에 중병을 앓기도 한다. 그런데 공상 범위가 좁고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 AB 대원 같은 사례가 증가한다면 소방대원이 위험한 현장에서 몸을 사리거나 주춤대지 않을까. “괜히 다쳐봐야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서 말이다. 이런 인식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위험한 순간은 매일 일어나고 누군가는 그 상황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 상황에 뛰어든 소방대원이 주춤댄다면, 그래서 화재진압과 구조가 늦어진다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경계해야할 일이 아닐까. 시민 사회에 위험을 가중하는 일이 되니 말이다. 공상 인정 범위와 급여 항목이 확대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받고 있을 또 다른 A, B 대원들에게 힘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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